글로벌 낸드플래시 시장의 경쟁 구도가 요동칠 것으로 보입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각각 세계 1위, 3위를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세계 2위 일본 키오시아와 4위 미국 웨스턴디지털(WD)이 합병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경쟁업체 수가 하나 줄어들기 때문에 한국 반도체 기업에 ‘긍정적’이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하지만 미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낸드플래시 기업 간 합병이라는 점에서 ‘부담 요인’이라는 분석도 있다.
반도체 불황에 미 일 단결해야 살아요
1일 외신에 따르면 키오시아와 WD는 합병법인 설립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합병법인 지분은 키오시아가 49.5%, WD가 50.5%를 가져갈 것으로 보입니다. 이를 위해 키오시아는 미쓰이 스미토모 등 일본 주요 은행에 2조엔(약 18조원) 규모의 대출을 신청했다고 합니다. 키오시아 대주주인 베인캐피털도 5000억엔을 추가 출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키오시아와 WD는 합작회사 설립 후 기업공개(IPO)를 통해 자금을 회수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키오시아와 WD의 합병은 2021년 4월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 보도로 수면 위로 올라왔습니다. 그동안 합병 작업은 속도를 내지 못했습니다. 각 사의 지분가치 측정 등에서 의견이 달랐기 때문이다. 양사 모두 자금 여력이 충분하지 않은 점도 발목을 잡았습니다.
최근 합병 작업이 속도를 내는 것은 낸드플래시 시장 불황의 영향에서다. 전 세계 낸드플래시 시장은 삼성전자(31.1%) 키오시아(19.6%) SK하이닉스(17.8%) WD(14.7%) 마이크론(13.0%) 등 5개사가 시장의 96.2%(올해 2분기 기준)를 나눠 갖고 있습니다. 주요 플레이어가 3곳(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인 D램과는 다른 상황에서다.
●올 상반기 누적적자 3조원 넘어요
낸드플래시 5개사가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수익성이 D램보다 낮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2분기 세계 1위 삼성전자도 낸드플래시로 수 조원대 적자를 기록할 정도다. 2~5위 기업의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습니다. 키오시아는 4~6월(2022회계연도 4분기)에 1714억엔(1조5547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습니다. 올해 누적적자만 3조원이 넘는 수준이다. WD가 같은 기간 기록한 영업손실도 5억8900만달러(약 7800억원)에 이른다.
삼성전자보다 투자 여력이 크지 않고 점유율이 낮은 키오시아 등은 지난해 하반기 일찌감치 감산을 선언하며 올해 시설투자를 전년 대비 절반으로 줄였습니다. 시장이 살아나기를 기다리며 버티기 시작한 겁니다.
1년여의 시간이 흘렀지만 낸드플래시 시장에서는 뚜렷한 회복세가 보이지 않습니다. 지난해 5월 개당 4.81달러를 기록했던 낸드플래시 범용 제품 가격은 지난 4월 3.81달러까지 하락했고 이후 5개월간 상승하지 못한 상황에서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구형 낸드플래시에 대한 적극적인 감산에 돌입하면서 올 4분기부터 시장이 반등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하지만 “업황 회복 시기가 더 늦어질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됩니다. 스마트폰 등 주요 수요시장의 회복이 더딘 영향에서다.
단독으로는 버티기 어려운 시점이 오자 키오스크와 WD가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고 투자 여력을 키우기 위해 합병에 속도를 내기 시작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양사의 합병 가능성이 커지는 것은 ‘오랜 협력관계’의 영향도 작지 않다. WD는 키오시아가 생산한 낸드플래시를 데이터저장장치(SSD)로 가공해 판매하고 있습니다. 162단 낸드플래시 등도 공동 개발하고 일본 야쓰카이치 북상공장도 함께 운영합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양사는 사실상 일체로 봐도 된다”며 “합작법인 설립은 예상된 시나리오”라고 설명했습니다.
경쟁사 수 줄어 긍정적인데…●합산 점유율 삼성전자 추월 가능성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 기업에는 어떤 영향이 있을까요? 반도체 업계에서는 ‘긍정적’이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플레이어가 줄어들기 때문에 ‘출혈경쟁’ 가능성도 그만큼 작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낸드플래시 업체들도 내심 ‘산업 재편’을 바라는 분위기다. D램 시장처럼 경쟁사 수가 3개 수준으로 압축돼야 수요에 맞춰 공급을 조절하고 제품 가격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어서다.
키오시아와 WD의 단순 합작 지분율이 34.3%로 삼성전자(31.1%)를 웃도는 것은 부담 요인이다. 키오시아와 WD의 합작법인 설립으로 ‘미국과 일본의 반도체 동맹’이 강화될 것으로 전망되는 점도 지켜봐야 할 포인트로 꼽힌다.
양사가 합병을 위해 넘어야 할 산도 만만치 않습니다. 일본 정부가 합병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키오시아가 사실상 마지막 남은 일본 메모리 반도체 업체이기 때문이다. 각국이 반도체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 정부가 쉽사리 합병을 불허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중국 경쟁당국이 양사 합병을 허용할지도 관심사다. 글로벌 기업이 합병을 완료하려면 사업을 하는 각국 경쟁당국(공정거래위원회 역할)의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인수가 허용되지 않으면 합병 작업은 실패로 끝납니다.
SK하이닉스 키오시아 지분 5조원어치 보유…향후 대응 주목
합병설이 나오면서 키오시아 지분구조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도시바는 2017년 경영난을 겪은 메모리 사업부 지분을 시장에 내놓았습니다. 2018년 베인캐피탈이 주도한 한·미·일 컨소시엄이 49.9%를 취득했습니다. 현재 컨소시엄의 지분율은 56.2%까지 늘었습니다. 도시바는 현재 지분을 40.6% 보유하고 있으며 일본 기업 호야도 3.1%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SK하이닉스는 2018년 5월 베인캐피털 컨소시엄에 투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