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며칠간 달러가 주요 통화 대비 큰 폭으로 하락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20일(현지 시간) 뉴욕 외환시장에서 주요 6개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지수는 0.42% 하락해 1월 2일 이후 최저치로 떨어졌다. 이로써 달러지수는 사흘 연속 0.5% 안팎으로 하락하는 최근 보기 드문 장면을 연출했다.
딜사이트 경제TV가 인베스팅닷컴을 확인해 본 결과 최근 달러지수가 3일 연속 하락한 것은 7월 24일~26일 사이였는데 이때는 3일 모두 0.01% 정도 하락했을 뿐이다.
이날 유로화는 달러화 대비 0.31% 상승해 지난해 12월 28일 이후 가장 강한 1.1119달러에 거래를 마쳤고, 파운드화도 올해 7월 이후 가장 높은 1.3054달러를 기록한 뒤 0.29% 오른 1.3026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달러는 특히 엔화에 대해 약세였다. 전날 8월 7일 이후 최저치인 145.20엔을 기록한 달러화는 이날도 0.82% 하락한 145.36엔에 거래를 마쳤다.
달러가 이처럼 갑자기 큰 폭으로 떨어진 데는 크게 세 가지 이유가 거론된다.
세 가지 이유
첫째는 미국의 금리 인하 현실화다. 특히 미국의 금리 인하 속도에 대한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되는 주 후반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 의장의 잭슨홀 연설과 그 전날 나오는 연준의 7월 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록 공개를 앞두고 금리 인하 기대감이 달러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는 해석이다.
ING는 이날 보고서를 통해 “지금 시장의 가장 큰 관심사는 달러가 중기 박스권 바닥을 찍고 곧 반등할지 아니면 중요한 하락 돌파가 시작될지 여부”라며 “연준이 9월 첫 금리 인하를 준비하는 동안 당분간 달러 약세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망했다.
파월 의장은 한국시간 23일 금요일 오후 11시 와이오밍 주 휴양지인 잭슨홀에서 경제전망을 주제로 연설할 예정이다. 오는 22일부터 24일까지 열리는 잭슨홀 미팅은 연준이 잭슨홀에서 매년 개최하는 경제정책 심포지엄으로 주요국 중앙은행 총재와 재무장관, 금융시장 전문가 등이 참석한다.
지난 8월 초 미국의 고용지표가 예상보다 크게 부진하게 나오면서 경기침체 우려가 커지자 트레이더들은 연준의 즉각적인 금리인하 가능성까지 점쳤지만, 이후 소매판매 지표 등이 긍정적으로 나오면서 즉각적인 금리인하는 물론 지난 9월 50bp 인하 기대감도 낮아졌다.
CME그룹 페드워치툴에 따르면 트레이더들은 9월 FOMC에서 연준이 기준금리를 50bp 인하할 가능성을 약 28%, 25bp 낮출 가능성을 72% 정도로 보고 있다. 이들은 다만 내년 말까지 약 222bp 인하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올해 FOMC는 현지시간 기준으로 9월 17~18일, 11월 6~7일, 12월 17~18일 세 차례가 남아 있다. 특히 9, 12월 회의 이후에는 경제전망도 함께 발표된다.
두 번째는 11월 5일 치러지는 미 대선에서 카말라 해리스 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꺾고 승리할 가능성이 커진 점이 달러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오는 18일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를 하루 앞두고 해리스 부통령이 공화당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근소하게 앞설 것이라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고, 전날에는 해리스 부통령이 경합주에서도 트럼프에 밀리지 않을 것이라는 여론조사 결과도 공개됐다.
워싱턴포스트(WP)와 ABC뉴스 및 입소스가 미국 성인 2336명을 대상으로 지난 9~13일 실시한 양자 가상 대결에서 해리스 부통령은 49%, 트럼프 전 대통령은 45%의 지지를 얻은 것으로 나타났다. 17일 뉴욕타임스와 시에나대가 애리조나 조지아 노스캐롤라이나 네바다 등 경합주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대선 지지율을 조사한 결과 두 후보는 각각 2개 주에서 우세하며 박빙의 상승세를 보였다.
이에 대해 티에르 위즈먼 맥쿼리그룹 전략가는 ‘비즈니스 타임스’지에 “해리스가 일부 주요 경합주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커졌고, 트레이더들은 ‘트럼프 트레이드’의 일부를 포기했지만 그중에는 달러 강세도 있었다”고 말했다.
트럼프 트레이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경기부양책 수혜 종목에 투자하는 것을 말한다. 투자자들은 그가 승리한 뒤 공약대로 재정지출을 늘릴 경우 금리가 상승하기 때문에 달러가 오를 것으로 예상해왔다.
세 번째는 21일 미국의 비농업부문 고용수정치 발표를 앞둔 경계감이다.
골드만삭스는 지난해 4월부터 올해 3월까지 이전에 보고된 것보다 60만~100만개의 일자리가 더 적게 창출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배녹 뱅 로벌 포렉스의 수석시장전략가인 마크 챈들러 씨는 미국의 일자리 창출 건수가 100만 개 감소한 것으로 조정된다면 같은 기간 당초 보고된 260만 개에서 160만 개의 일자리만 새로 만들어졌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만약 이처럼 일자리 창출 건수가 급격히 하향 조정되면 한동안 잠잠했던 경기침체 우려와 함께 9월 50bp 금리 인하 기대감이 되살아날 수 있지만 이는 모두 달러 약세 요인이다.
맥쿼리의 위즈먼은 “미국 경제는 여전히 ‘금융 충격’이 발생하면 경기 침체에 취약하다”고 진단했다.
달러-엔 움직임에 특히 주목
한편 시장에서는 달러가 특히 엔화에 대해 어떤 움직임을 보일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일본은행이 지난달 31일 기준금리를 0.1%에서 0.25%로 올린 뒤 금리가 싼 일본 엔화로 돈을 빌려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미국 같은 나라에 투자하는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우려감에 조금이나마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급격히 높아진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금융시장 불안이 확산되자 지난 7일 우치다 신이치 일본은행 부총재는 “지금처럼 금융시장과 자본시장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금리를 인상하지 않겠다”며 시장 참가자 달래기에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