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령에 병든 부모를 자식이 찾아오지 않는 상황은 단순히 ‘나쁜 아이’라는 한 마디로 설명하기 어렵다. 물론 책임감이 없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된 관계의 결과가 늦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마지막 순간의 침착함이 아니라, 그 이전까지의 관계가 더 큰 이유가 된다.
- 어린 시절 감정보다 통제만을 받으며 자란 경우
대화보다 지시가, 공감보다 설교가 더 많았던 관계다. 아이들은 부모를 편안한 존재가 아니라 긴장감이 있는 존재로 기억하게 된다.
어른이 되어도, 다가가면 마음이 불안해진다. 그 때문에 의무감을 느끼더라도 감정적인 걸음은 멀어지게 된다. 결국 몸은 커도 마음의 거리는 그대로 남는다. 어린 시절의 감정은 오래 남는다.
- 부모가 평생 동안 자녀를 인정하지 않은 경우
잘 해도 부족하다고 말해 비교와 평가에 익숙해져 있었다. 아이들은 부모 앞에서 언제나 작아지는 느낌을 받는다.
시간이 지나면 관계를 회복하기보다 회피하게 된다. 가까이 갈수록 상처가 다시 살아나기 때문이다. 결국, 인정받지 못한 기억이 효심보다 더 오래 남는 경우가 있다.
- 부모가 관계 책임을 항상 아이에게만 떠넘긴 경우
연락도 돌봄도 언제나 아이의 역할이었다. 부모는 그저 기다릴 뿐이었고, 외로움만을 표현했다. 이러한 구조가 오래 지속되면 아이는 관계를 부담으로 느끼게 된다.
사랑이 아니라 의무로 굳어버리기 때문이다. 결국, 한쪽만 열심히 하는 관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멀어져만 간다.
- 부모가 평생 동안 타인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를 보인 경우
배우자에게는 거리낌 없이 행동하고, 주변 사람들을 얕보며, 아이의 인생도 가볍게 대했다. 아이들은 나이가 들수록 부모를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존경이 무너지면 거리감도 생긴다.
결국 혈연만으로는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 인간으로서의 태도도 함께 평가받는다.
통제된 기억, 인정되지 않는 상처, 일방적인 관계, 그리고 무너진 존경. 이 네 가지가 쌓이면 나이가 들어 부모가 병들어도 발걸음이 멀어질 때가 있다.
따라서 노년기의 고독은 마지막 순간에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인간관계의 결과인 경우가 많다. 결국 아이는 키운 만큼만이 아니라, 어떻게 대했는지도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