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이 움직일까? 움직이는 속도가 빠를수록 스트레스 수치가 높다고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SNS 여러 게시물에서 소개하고 있다. 댓글을 보면 ‘역시 정말 빠르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등 실제로 사람마다 다른 반응을 보이곤 한다. 이러한 동적 착시 현상 외에도 음영 착시 현상을 이용하여 스트레스 수치를 확인하는 심리 테스트로 이용하기도 한다. 회색 알약을 놓고 빨간색이나 파란색으로 보이지 않는지 묻는 식이다. 시각효과로만 보이는 착시현상이 정말 스트레스 수치를 대변할 수 있을까?
◇SNS 착시 심리테스트, 재미로만 봐야 스트레스 수치와 관련이 있지만 신빙성은 낮다. 시각은 물체 표면에 반사돼 망막에 입사된 빛이 대뇌에서 어떻게 해석하고 인지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레티넥스 이론(retinex theory)이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레티넥스 이론을 고려하면 시각은 대뇌피질이 어떤 상태냐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며 “만성적인 스트레스를 받으면 대뇌피질이 피로하고 구부러진 모양이나 음영으로 유발되는 착시 현상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게다가 스트레스는 심박수를 올리고 집중력과 주의력은 떨어뜨려 착시하기 쉽게 만든다. 문제는 모든 착시 현상이 스트레스로 유발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임명호 교수는 “스트레스 지수가 높으면 착시 현상이 잘 보일 수 있지만 착시 현상으로 스트레스 지수를 측정한다는 것은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착시현상이 얼마나 강하게 느껴지는지에 대한 연구도 진행된 적이 없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심리검사의 신빙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매우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스트레스 지수를 측정하면서 명확한 기준을 찾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며 “SNS에서 난무하는 심리테스트는 그런 근거가 없고 타당성과 신뢰도 모두 낮기 때문에 재미로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스트레스 수치가 높기 때문에 테스트에서 말하는 결과대로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쉽게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심리테스트가 아닌 그림이 심리테스트로 둔갑했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한 틱톡에서 유행한 심리테스트(△자료사진)가 일본 신경과 전문의 야마모토 하시마(Yamamoto Hasima)가 제작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 우크라이나의 프리랜서 그래픽 아티스트 유리 펠레피디아(Yuri Perepadia)가 제작한 그림이었다. 야마모토 하지마(山本羽島)는 실존 인물도 아니었다.
◇로샤 검사, 같은 착시 이용했지만 신빙성이 훨씬 높아 착시그림이 심리테스트로 인지돼 신빙성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로샤프 잉크 반점검사(Rorschach Inkblot Test) 덕분으로 보인다. 로샤 검사라고도 불리는 이 검사는 스위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헤르만 로르샤흐가 1921년 설계해 지금까지 약 100년 가까이 임상에서 활용되고 있는 신빙성 높은 검사다. 애매한 데칼코마니 잉크 얼룩 착시도 10장으로 스트레스를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 피시험자의 정신건강을 확인하고 성격과 성향까지 유추한다. 상기 착시심리검사와 마찬가지로 착시그림을 이용하지만 원리는 다르다. 위 검사가 단순한 시각반응을 보는 것과 달리 로샤 검사는 환자의 심리반응을 해석한다. 미국 심리학자 헨리 머레이는 로샤 검사의 원리를 “사람들은 모호하고 불분명한 자극을 접하면 분명한 자극으로 인식하려 하고, 이러한 습성 때문에 대답하는 과정에서 피실험자의 내적 갈등이나 성격 특성, 심리 상태가 강하게 반영된다”고 설명했다. 결과를 해석하는 방법도 다르다. 피시험자의 반응 시간, 내용, 반응 영역 등을 전문가 매우 구체적으로 분석하여 결과를 도출한다. 김선미 중앙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로샤 검사는 객관적으로 정답이 정해지지 않았고 주관식으로 환자 반응을 평가하는 대표적 투사검사”라며 “100년이 지나는 동안 수많은 임상시험과 논문이 축적돼 증거가 쌓이고 발전했다”고 말했다. 보통 상급병원 정신건강의학과를 찾는 성인 환자 대부분에게 시행된다. 곽금주 교수는 “해석이 너무 어려워 신빙성과 타당성이 높은 결과를 얻으려면 전문 임상심리학자에게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스트레스 수치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으로는 심박변이도(HRV) 검사가 있다. 조소은 가천대 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심박 간격은 주기적으로 미세하게 변화하는데 스트레스 지수가 낮은 사람일수록 자율신경계가 빠르고 서로 균형을 이뤄 변화가 많다”며 “이 점을 이용해 스트레스 수치를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스트레스 지수가 높으면 동반되는 신체 증상은…안타깝게도 아직 스트레스 지수를 정밀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은 병원을 찾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스트레스 수치가 높을 때는 여러 증상이 따른다. 이런 징후들을 보면 정신건강이 더 나빠지기 전에 바로 자신의 상태를 짐작할 수 있다.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가장 먼저 대표적으로 나타나는 몸의 증상은 소화불량증이다. 위와 장은 감정의 영향을 많이 받는 자율신경계에 의해 조절되기 때문이다. 스트레스가 자율신경계를 자극하면 위와 장 운동이 저해되고 복통 설사 변비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방귀도 잦아진다. 실제 미국 로마재단연구소와 프랑스 다농뉴트리샤 리서치 공동연구팀의 연구에서 장·가스 설문조사(IGQ) 점수가 높을수록 스트레스 수치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는데, 참가자들이 호소한 주요 장 관련 증상은 ▲방귀(81.3%) ▲배에서 나는 소리(60.5%) ▲트림(58%) ▲구취(48.1%) ▲가스 차가운 느낌(47.2%) ▲복부팽만·포만감(39.6%) 등이었다. 혈당치도 올라간다. 스트레스 호르몬으로 알려진 코르티솔이 분비돼 혈당을 낮추는 호르몬인 인슐린 작용이 방해되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로 근육이 딱딱해지고 긴장성 두통도 자주 동반된다.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서는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상황에서 가급적 벗어나 운동, 산책 등을 하면서 스스로에게 다른 자극을 주는 것이 좋다. 심호흡, 족욕, 명상 등으로 교감신경이 과활성화된 자율신경계의 균형을 맞추는 것도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