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대상을 차지했던 지난달 제59회 백상예술대상 드라마 부문을 다시 살펴보면 한 가지 특징을 찾을 수 있습니다. 작품상 최우수 연기상 여우조연상 신인상 연출상 각본상 등 주요 수상작과 후보작을 합쳐 지상파 작품이 없었다. 대상작을 비롯해 넷플릭스 <더 글로리>, JTBC <나의 해방일지>, tvN <우리의 블루스> <작은 아낙네들> <슐프>, 웨이브 <약한 영웅> 등 모두 비지상파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작품들이었다.
작년에 백상예술대상도 비슷한 경향을 보였습니다. 드라마 작품상에 MBC ‘옷소매와 붉은 끝자락’만 후보에 올라 겨우 지상파 체면을 차렸습니다. 나머지 후보는 모두 비지상파와 OTT 작품에서다. 대상은 넷플릭스의 오징어 게임이다. 게다가 지난해 수상작의 절반이 넷플릭스 작품이었습니다.
요즘은 KBS MBC SBS에서 드라마가 제작되고 있느냐는 물음이 나올 정도다. 10%대 시청률이 나오는 지상파 드라마는 KBS 주말극·일일극과 SBS <낭만닥터 김사부3> 정도다. <낭만닥터>는 시즌제 드라마이기 때문에 기대감을 가진 기존 시청층의 뒷받침으로 13%대 시청률이 나오고 있지만 신작은 언급도 되지 않습니다. 채널이 다양해지면서 시청률의 의미가 퇴색된 것을 고려해도 지상파 드라마는 화제성까지 떨어지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30%대 시청률이 보장됐던 KBS 2TV 주말극조차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 3월 종영한 <삼남매가 용감하게>는 출생의 비밀, 기억상실증 등 통속적 요소로 점철되면서 이야기 전개도 지지부진했습니다. 이 드라마 자체 최고 시청률은 28%다. 주말 저녁 시간대 고정 시청층을 갖고 있던 KBS 2TV 주말극 시청률은 지난해부터 30%대를 밑돌았습니다.
지상파 드라마는 양적으로도 줄어들고 있습니다. 트렌디한 드라마가 배치된 수목미니시리즈의 시간대는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SBS는 2019년 11월 ‘시크릿 부티크’를 끝으로 수목극을 폐지했습니다. 지난해 11월 KBS 2TV ‘진검승부’, 지난해 12월 MBC ‘일당 백집사’ 이후 지상파 수목극은 자취를 감췄습니다. 이 시간대는 <라디오스타> <과학수사대 스모킹건> 등 예능 프로그램이 차지했습니다.
방송계에서는 주말에 ‘뭉쳐야 한다’ 시청 경향이 강해지면서 수목극 시청률이 떨어지고 광고가 연결되지 않아 수목극을 유지하기 어려워졌다고 말합니다. 상대적으로 제작비가 저렴한 예능 프로그램을 이 시간대에 편성해 ‘리스크’를 피하는 것입니다. 이대로라면 지상파에서는 주말극과 일일극만 남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습니다.
지상파 드라마의 위기 요인은 복합적이다. 세대를 아우르는 시청자를 볼 수 있기 때문에 표현 수위에 제약이 있습니다. 지상파가 <오징어 게임>을 방영하지 못하는 이유다. 본방사수 개념이 사라지면서 TV 앞에 시청자를 모으기도 어렵습니다. 가장 큰 요인은 제작비다. OTT 제작사가 지원하는 드라마는 회당 평균 20억~30억원 이상의 제작비가 투입됩니다. 지상파로는 평균 10억~15억원 수준이다. 절대적인 제작비 차이가 있기 때문에 유명 작가와 스타급 배우를 섭외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최근 지상파 드라마에 신인 배우가 주연을 차지하는 일이 많아진 이유다.
주당 근로시간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기존에 A팀에서만 촬영할 수 있었던 드라마를 B팀, C팀까지 가동합니다. 지상파 방송 후 OTT에서 방송되는 것을 고려해 4K급 고화질로 촬영해야 합니다. 제작비 상승 요인은 날로 늘고 있습니다.
한 외주제작사 드라마 PD는 25일 “지상파에 편성을 받으려면 OTT 편성까지 알아봐야 하고 OTT에 들어가려면 4K 화질은 돼야 하니 지금 제작비로는 감당할 수 없는 실정”이라며 “최근 ‘상암동에 가면 울음소리밖에 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온다”고 전했습니다.
제작비 차이를 인정하고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등 감동과 재미를 모두 갖춘 드라마를 발견하지 못한 것은 지상파 방송사들의 ‘눈높이’ 문제다. 한때 유행을 선도했던 지상파 드라마 관계자들이 트렌드를 읽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난해 7월 MBC 업무보고를 받는 방송문화진흥회 회의 속기록에 따르면 김도인 이사는 MBC나 KBS에서 이런 드라마(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나의 해방일지 등)를 만들어야 하는데 보면 tvN에서 만들어 JTBC에서 만들고 있어요. 그러면 공영방송은 뭐 하는 곳이냐는 국민의 질책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