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후 10시경(현지 시간) 제76회 칸국제영화제가 열리는 프랑스 칸의 뤼미에르 대극장 앞에서는 익숙한 K팝 스타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영화제 주 행사장인 이 레드카펫에 모습을 드러낸 건 그룹 블랙핑크 멤버 제니였다.
흰색 드레스에 큰 리본 머리띠를 한 제니는 가수가 아닌 배우 자격으로 레드카펫을 밟았다. 그의 연기 데뷔작인 미국 HBO 시리즈 <지아이돌>이 칸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초청됐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시리즈가 처음 공개된 이날 제니는 시리즈 제작자이자 주연인 팝스타 더 위켄드, 릴리 로즈뎁 등과 나란히 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지아이돌〉은 팝 음악 산업의 어두운 면을 다루는 6부작 드라마로 오는 6월 미국 현지에서 방송될 예정이다.
K팝 스타들이 세계 최고의 영화제인 칸영화제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제니를 비롯한 많은 K팝 스타들이 잇따라 칸을 찾아 전 세계 영화 팬들을 만났다.
가장 먼저 칸 레드카펫을 밟은 사람은 같은 그룹의 멤버 로제였다. 로제는 영화제 이틀째인 17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괴물> 프리미어 시사회가 열린 뤼미에르 대극장 레드카펫에 ‘깜짝 등장’했다. 우아한 블랙 드레스 차림으로 나타난 그는 앰배서더로 활약 중인 브랜드 생로랑의 초청으로 이 자리에 섰다. 또 다른 멤버 리사는 닷새 뒤 칸에 모습을 드러냈다. 리사는 이날 자신이 앰배서더로 활동하는 브랜드 ‘셀린’의 파티에 참석했다.
최근 스파이시로 인기를 끌고 있는 그룹 에스파도칸을 찾았다. 에스파는 24일 오후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열린 정아이헌 감독의 더 포토플레이 공식 상영에 앞서 레드카펫에 올랐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에스파가 나타나자 이들을 보기 위해 현장에 모인 현지 관객들이 환호했다. 스위스 쥬얼리 브랜드이자 영화제 공식 파트너인 쇼퍼드의 공식 앰배서더로 초청됐다. 브랜드 공동 사장이자 아트 디렉터인 캐롤라인 슈페레는 에스파 멤버들을 2324일 열리는 패션쇼와 아트 이벤트 디너, 파티 등에 초대했다. 영화제 사상 K팝 그룹이 이 행사에 참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영화제를 찾은 또 다른 K팝 스타는 그룹 방탄소년단의 멤버 V다. 셀린의 앰배서더인 그는 22일 브랜드 주최 파티에 참석했다. 이날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셀린이 준 칸 영화제 초청장을 공개했다. 수차례 열애설에 휩싸인 뷔와 제니가 같은 시기 영화제에 머물면서 이목이 집중됐다.
세계 최고의 영화제인 칸이 영화와 무관한 K팝 스타를 초청하는 것은 이들이 가진 세계적 영향력 때문이다. <디아이돌>은 ‘제니 연기 데뷔작’으로 홍보됐지만 정작 칸에서 개봉한 1, 2회에서 제니의 출연 분량은 ‘특별출연’ 수준으로 적었다. 그럼에도 레드카펫에서 가장 크게 이름이 불린 사람은 주연 릴리 로즈뎁이나 더 위켄드가 아니라 제니였다. 칸은 다양한 글로벌 브랜드의 마케팅장이기도 하다. 로제와 제니는 각각 자신이 앰배서더인 생로랑, 샤넬 드레스를 입고 레드카펫을 걸었다. 쇼파드, 셀린 등이 전 세계 10~20대에게 큰 영향력을 가진 에스퍼, 뷔 등을 초청한 것도 이런 기회를 활용하기 위해서다.